인턴 하기 힘든 날

역치가 높아서 그런지, 지금까지 세 달 째 인턴 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4월 중 이비인후과 수술이 익일 6A에 끝났던 날이 그날이었다.
그날 이외에는 인턴이 할 일이 많기는 해도 견딜 만은 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근래에 인턴 생활이 힘들다고 느낀 날이 하루 더 생겼다.
이틀 전 11층 당직(101, 111, 112, 114 병동)을 하던 날이었다.
11층 당직을 서는 날의 인턴의 수면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대개 혈액배양 환자수이다.
혈액종양환자들은 대개 히크만 카테터를 가지고 있고, 이들에게서 열이 날 경우 말초 2쌍과 히크만 2쌍, 총 4쌍(8병)짜리 혈액배양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준비하고 채혈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혈액배양 환자수가 많으면 그만큼 잠 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밤에는 혈액배양을 한 사람의 숫자가 5명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당직이 힘들었던 이유는 갑자기 전신 상태가 악화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발 호흡이 없거나 매우 약할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나쁜 경우, 중환자실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수동식 인공호흡기(앰부 백)를 적용해야 한다.
이 경우 앰부 백을 짜는 일은 주로 인턴의 몫이다.
앰부 백을 짜는 일은 힘든 편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쉴 수 없는데다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이 쌓이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내과에서 당직을 서는 동안에 내가 앰부 백을 짜야 하는 환자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날 밤에는 환자 두 명이나 앰부 백을 짜야 했다.

한 환자는 밤 10시 경에 상태가 악화되었다.
혈액 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하고 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11시부터는 앰부 백을 짜면서 내과계 중환자실까지 이동했다.
그런 뒤에 그동안 쌓였던 소독, 채혈, 혈액배양 검사, 관장, 청결 간헐 도뇨, 비위관 삽입 및 세척 등의 일을 했다.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3시 반경이 되었다.
원래의 목표가 3시에 잠드는 것이었다가 30분 정도 늦어진 것이라 이정도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30분 정도 잠을 자던 중 콜을 받고 잠에서 깼다.
케모포트 바늘 교환, 심전도 검사 등의 할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들을 마무리하고 5시 경에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환자에게서 각종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고 응급 CT 검사에 동반하여 다녀왔다.

그런 뒤 잠을 잘까 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내 담당 병동에서 할 정규 채혈을 준비하기로 했다.
당직은 7시까지 서야 하는데 내가 맡은 병동의 정규 채혈은 6시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규 채혈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앰부 백을 짜러 와야 한다는 콜을 받았다.
5시 반부터 앰부 백을 짜기 시작해서 아침 7시에 당직이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앰부 백을 짰다.
당직을 마치고 정규 근무가 시작되었는데, 밤새 잠을 30분밖에 자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6시부터 해야 할 정규 채혈을 하나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허겁지겁 정규 채혈, 처방 입력, 동의서 받기, 소독 등의 일을 해두고 당직실에서 1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에 다시 골수 검사 보조를 하러 병동에 갔다.
급한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정오가 다 되었다.

감기에 걸려 몸이 아픈 상태에서 배도 고프고 잠도 부족한 것이 겹치니 힘들었다.
마지막 식사 후 15시간만에 먹는 병원식당의 모밀국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환자가 건강하기를 인턴이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느끼게 된다.
환자가 아프면 환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환자이지만, 보호자, 주치의, 간호사, 인턴 모두가 고생을 하게 된다.
이유는 다르더라도, 인턴은 환자가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열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가슴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숨쉬는 것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고, 수액 들어가는 팔이 붓지 않기를 바라고, 변을 제때 잘 보기를 바라고, 소변을 잔뇨 없이 스스로 잘 보기를 바라고, 식사를 입으로 잘 하기를 바라고, 욕창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할 리가 없다는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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