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죽음, 그리고 CPR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의 사이에는 질병이 있다.
질병과 죽음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답 중 하나를 인턴 의사의 입장에서 알아가는 중이다.

나중에 메이저 과를 선택하지 않게 된다면, 내 평생 중 이번 인턴 1년 동안이 죽음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기간이 될 것이다.
특히 요즈음은 세 달째 메이저 과에서 근무하다 보니 환자의 사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히크만 카테터에서 채혈하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히크만 카테터를 제거한 경험이 있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보호자가 연락되지 않아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경험도 있다.

인턴에게 환자의 사망이 가지는 의미

병실에 입원한 환자의 사망 과정은 대개 비슷한 경과를 밟는다.
호흡곤란, 심박수 이상, 항생제로 조절되지 않는 발열, 혈중 염증수치 증가, 전해질 불균형, 의식저하 등의 징후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심정지가 발생하면 병원 내에 CPR 방송을 한다.
의료진이 모여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심박동이 회복되면 환자를 내과계 중환자실로 이송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심박동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다가 연락 받고 찾아온 보호자가 심폐소생술 중단에 동의하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하고 사망진단을 내린다.

이러한 과정을 인턴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혈액배양과 동맥혈 채혈을 동시에 시행하게 되는 환자가 있거나, 채혈, 관장, 심전도 검사를 자주 시행하게 되는 환자가 있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둔다.
그러다가 언젠가 “솔시~레솔 솔시~레솔, 솔시~레솔 솔시~레솔”로 시작하는 다급한 CPR 방송 알람이 울리면 당장 몇몇 환자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CPR 방송에서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소리를 듣고 해당 병실로 달려가 보면 예상했던 환자에 대해 심폐소생술이 진행중이다.
장갑을 끼고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심장마사지를 시작한다.
환자의 심박동이 회복되면 그 환자를 담당하는 인턴이 앰부백을 짜면서 내과계 중환자실로 이동한다.
심박동이 회복되지 않고, 심폐소생술 중단에 보호자가 동의하여 사망 진단이 내려지면, 그 환자를 담당하는 인턴이 히크만 카테터, 소변줄 등을 제거하게 된다.

요약하건대, 인턴에게 환자의 질병과 죽음의 사이에는 CPR(심폐소생술)이 있다.

DNR

가끔씩은 CPR 방송 없이 환자가 사망했으니 카테터를 제거해달라는 연락만 병동에서 인턴에게 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심정지가 발생하기 이전에 환자가 CPR을 원치 않는다고 미리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를 심폐소생술 거부, 또는 DNR(Do not resuscitate)이라고 부른다.
또는 단지 CPR을 거부하는 것 이외에도, 영양공급, 혈액투석, 수혈, 혈액검사, 항암치료 등에 관해 선택할 수 있는 포괄적인 내용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CPR의 의미

심정지가 찾아온 환자에게 CPR을 시행해 자발적인 심박동이 회복되더라도 대부분 그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의식 없이 심장만 뛰는 상태로 몇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다시 심정지가 발생한다.
처음 CPR을 할 때에는 환자의 심박동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여러 환자에게 CPR을 시행해 보고 그 장기적인 경과가 좋지 않은 것을 알게 되니 CPR을 하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심정지는 한밤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인턴이 하는 술기들 중 가장 힘든 것이 흉부압박인데다, 한 번 CPR을 시작하면 대개 20분 이상씩은 하기 때문에 CPR을 하고 나면 몸이 지친다.
결국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몸이 힘든 일을 해야 하니 마음도 지치게 된다.
이 CPR을 왜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누군가는 죽음을 맞는 환자에 대한 예의라고 대답한다.
죽음을 맞을 때에 환자 혼자서 쓸쓸히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사, 간호사가 환송해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라도 적어도 30분은 흉부압박을 해야 예의가 아니겠냐고 주장하며, 일부러 사전에 DNR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어 혼자 흉부압박을 해보고 나면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대답이지만 나는 CPR이 갑작스럽게 죽음에 마주친 환자가, 가족 곁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환자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해 미리 DNR을 받는 등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지 못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일종의 벌이라고도 느꼈다.

물론 짧은 기간에 몇 번 CPR을 해 보았다고 해서 내가 심폐소생술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해 보게 되고, 교과서로부터 머리로 받아들인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개념이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한 걸음 나아갔다고 느끼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라는 말은 나에게 인턴이 된 이후에 더욱 뼈저리고 가슴 뭉클하게 와닿고 있다.
아직은 느끼고 배우고 자라야 할 점이 더 많다고 매일 생각한다.

3줄 요약

  1. CPR은 심정지 환자에게서 심박동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다.
  2. 인턴에게 환자의 죽음은 CPR을 의미한다.
  3. CPR의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고 배우는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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