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성적이 나왔다

인턴 성적

의대생들은 성적이라는 단어에 예민하다.
여느 대한민국 학생들보다 이 단어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왔기에 그들이 의대생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대에 다니는 동안에도 성적에 대한 집착은 유지되며, 아무리 못하더라도 재시나 유급만큼은 피하기 위해 공부하다 보면 어느 새 졸업을 맞는다.

막상 인턴이 되면 시험의 압박감에서는 다소 해방되지만 대신에 근무 성적이라는 새로운 성적이 기다리고 있다.
매 달마다 과를 옮겨가면서 수련을 받고, 해당 과에서는 인턴의 근무 성적을 평가한다.
3월부터 10월까지 집계된 근무 성적은 다른 몇 가지 항목 점수들과 합산하여 인턴 성적이 되고, 이 성적은 대개 11월 말경에 개별적으로 통보된다.
결국 의대생이 졸업하고 인턴이 되어서도 성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인턴이 근무 성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시기는 11월부터이고, 이 시기의 인턴을 흔히들 말턴(말년 인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1월 13일

휴가차 부산에 와 있던 중 인턴 카페에 새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떴다.
네이버 카페에 접속해 보니 교육연구부에서 인턴 근무 성적 공지에 관한 안내문을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뒷 부분은 중략했으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턴 성적은 다음 주말쯤에나 알랴줌ㅋ’ 이라는 것이었다.
레지던트 선발에서 인턴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에 10월 말부터 교육연구부에 전화가 빗발쳤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았다.
또한 인턴 성적을 산출하는 데에 필요한 다른 점수들은 대개 집계가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11월 중순에 이러한 공지를 올리는 것은 일부 과에서 교육연구부에 10월 인턴 성적을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도 다른 인턴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턴 성적이 궁금했지만, 성적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11월 21일

전날 퇴근하면서도 같은 당직실 쓰는 사람들끼리 인턴 성적이 21일에 발표될 것인지 22일에 발표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보다 최신 소식에 따르면 목요일에 발표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출근하고 나서도 문자가 오기만 하면 혹시나 인턴 성적이 아닐까 싶어서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인턴 성적은 통보되지 않은 채였다.
오후 7시 퇴근을 30분 정도 남기고서 분당 응급실 단체 카톡창에 ‘근무평가등수옴!!’ 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문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 성적 통보에 개인별 시간차가 있는 듯했다.
5분 뒤에 나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교육연구부로부터 문자 발송에 오류가 있었다고 하는 공지를 받고 잠시 뒤숭숭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등수 하나가 밀리는 정도에서 마무리되어 마음이 놓였다.

내 인턴 근무 성적이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정도여서 만족스러웠다.
나의 지난 8개월이 단지 몇 자리 숫자로 표현된다는 게 허무하기도 했다.
그동안 항상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일해왔고, 다같이 힘들고 피곤한 상황에서 나의 짜증이 남에게 투사되지 않도록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력했던 매 순간들이 떠올랐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노력한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앞으로 남은 인턴 기간에도 지금껏 해온 것처럼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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