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전문의입니다

9월 29일

원서 접수에 6개월 이내에 촬영한 여권용 사진이 필요하다 하여 근처 사진관을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사진 파일도 받았다.

10월 12일

이비인후과학회 홈페이지 (http://www.korl.or.kr/) 에 2018년 제61차 전문의자격시험 시행 안내라는 글이 올라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1. 전문의자격시험 홈페이지에 응시자 정보 입력
  2. 원서 구매
  3. 원서 및 서류 제출
  4. 1차 시험
  5. 2차 시험

전문의자격시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회원가입을 하고  내 정보를 입력하고 사진, 의사 면허증, 수련과정 이수(예정)증명서를 업로드했다.

그런 뒤 원서비 (20만원) 을 결제했다.

이비인후과 원서 접수시에 필요한 서류는 원서와 전공의 기록부였다.
원서 작성에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전공의 기록부에 채워야 할 내용이 많았다.
전공의 기록부를 미리 작성해두지 않은 사람들은 밀린 방학숙제 하는 느낌으로 며칠에 걸쳐 기록부를 작성해야 했다.

10월 24일

전공의 연회비 (30만원), 이비인후과 평생회비 (80만원), 응시료 (70만원) 을 송금했다.
원서와 전공의 기록부를 들고 이촌역 근처에 있는 이비인후과학회 사무국을 찾았다.

전공의 기록부를 빈틈없이 작성했다고 생각했으나, 원내 집담회 (컨퍼런스) 제목이 누락된 것이 확인되어 병원에 다시 돌아와서 해당 부분을 보충했다.
그런 뒤 다시 방문하였을 때에는 문제 없어 무사히 서류 제출을 끝냈다.

본격적인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12월 25일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에서 전문의 시험날 차량 지원을 하여 메일로 신청했다.

1월 11일

전날 수험표를 출력해 두고 병원에서 밤까지 공부하다가 당직실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전공의협의회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러갔다.
버스 앞에서 출석체크를 하면서 맥모닝과 생수를 주었다.

버스는 고사장인 삼육대학교를 향했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의사협회에서 핫팩, 생수, 초콜릿바 등이 담긴 종이백을 나누어 주면서 응원해 주었다.

고사장까지 찾아온 부모님께서 응원해주고 가셨다.
내가 시험 치를 128 고사장은 에스라관 2층이었고, 이비인후과와 정형외과가 모여 시험을 치게 되었다.

8시 반까지 입실을 완료한 후, 9시에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1교시 105문제, 2교시 35문제 (R형 20문제) 으로 공지되었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1교시 100문제, 2교시 40문제였다.
대부분의 문제가 최근 기출문제와 유사하게 출제되었으나, 일부 문제는 오래된 기출문제나 인트레이닝 문제에서 출제되었다.
또한 새로 출제된 문제들 중에는 어렵거나 정답을 고르기 애매한 것들이 있었다.

11시에 1교시 시험이 끝난 뒤 30분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준비해간 책을 보며 공부했다.

2교시는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치러졌다.
앞의 20문제 (A형) 는 쉬운 편이었으나 뒤의 20문제 (R형) 는 어려웠다.

시험이 끝난 뒤 교수님들께 인사드리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오는 길에 몇몇 낯설거나 어려운 문제들의 답을 확인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맞아서 기뻤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는 교수님들을 직접 찾아뵙거나 전화를 드렸다.

2차 시험 기출문제집을 선배들에게 받았으나, 1차 시험 합격 발표 나기 전까지는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1월 15일

오후 2시에 전문의 자격시험 홈페이지에서 합격자 명단이 공개되었으나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하여 다른 동기들의 이름을 찾아보았으나 전부 없었다.
알고보니 착오로 작년 합격자 명단을 올린 것이었다.
얼마 뒤 새로 합격자 명단이 공개되었고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5시에는 대한의학회에서 합격 통지와 함께 사과 문자가 왔다.

본격적인 2차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1월 16일

동기 레지던트들끼리 각자 흩어져 공부하다가 시간을 맞추어 공부방으로 모였다.
알레르기내과에서 빌린 알레르기 피부반응검사 기구를 가지고 실습해 보기 위해서였다.
검사방법을 동영상으로 많이 보았으나 실물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 뒤에는 후각검사실에 방문하여 비강통기도검사, 음향비강통기도검사, 후각검사 (CCSIT) 을 각각 실습해 보았다.

이런 검사들을 실제로 연습해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1월 17일

동기 레지던트들이 모여 평형검사실을 방문하였으나, 나는 다른 공부를 하느라 가지 못했다.

1월 18일

다들 청력검사실에 모여 순음청력검사 (기도, 골도), 언어청력검사, 임피던스 검사, 청성뇌간유발반응역치검사 등을 실습해 보았다.

1월 19일

그동안 컴퓨터를 통해 기출문제 공부를 했으나, 시험날 대기실에서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인쇄된 공부자료가 필요했다.
시험을 하루 앞두고 최근 10개년의  2차시험 기출문제를 분과별로 모아 제본했다.

제본한 기출문제를 한 번 다 본뒤 서울아산병원 근처의 모텔로 가서 잠을 청했다

1월 2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2차 시험을 쳤다.

8시까지 입실하여 9시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A, B) 가나다순으로 시험을 치렀다.
나는 B그룹 3번째 조에 속해서 시험을 치게 되었다.

귀, 코, 목 각각 3방씩 총 9방을 돌면서 문제를 풀었다.
각 방에서의 제한시간은 5분이었고, 끝나기 1분 전에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1개의 방에서만 시간이 모자랐고 나머지 8개의 방은 문제를 푼 뒤 시간이 남아서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9개의 방의 시험을 다 돌고 난 뒤에는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다.

내 시험이 끝난 뒤에는 강당에 모여 영화 2편을 감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오후 4시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시험이 끝난 뒤 귀가했다.

2월 2일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오후 2시에 홈페이지를 통해 합격자 발표가 나왔다.

내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11년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훌륭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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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전공의 자율평가고사 (인트레이닝) 후기

7월 18일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2014년도 전공의 자율평가고사 시행 안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시험을 위해 각 파견병원별로 일괄접수를 했다.

9월 1일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2014년도 자율평가고사 수험장 배정 안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율평가고사에 응시한 연차별 113~124명의 이비인후과 전공의들의 명단과 각각에게 배정된 수험장이 함께 공지되었다.
나는 서울대병원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다.

시험일

시험 전날부터 기출문제 공부를 시작했으나 당직과 겹쳐 밤 사이에 별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시험 날 오전에서야 2012년 기출문제만 한 번 풀어볼 수 있었다.
오후 2시가 되자 고려대, 중앙대, 연세대, 서울대, 중앙보훈, 부산대, 경북대, 충남대, 전남대, 전북대병원 등 전국 10개 지정장소에서 2014년도 전공의 자율평가고사가 시작되었다.
각 고사장에 모인 전국 이비인후과 전공의들은 3시간동안 총 100개의 문제를 풀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과, 두경부외과에 비해 비과 문제가 어렵게 느껴졌다.
아는 문제는 답이 보여 금방 풀었고, 모르는 문제는 고민하더라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금방 찍었다.
알든 모르든 빠르게 답을 골랐기 때문에 퇴실이 가능한 4시가 되자 곧바로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실할 수 있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가면서 답안지를 받을 수 있었고, 곧바로 내 점수를 알 수 있었다.
1년차는 50점만 넘어도 전국 순위권이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반타작만 하자는 생각으로 채점을 했다.
그러나 흐린 기억을 더듬어 찍었던 답들이 의외로 많이 맞아서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 기뻤다.

9월 24일

외래 치프 선생님이 전체 카톡창에 자율평가고사 관련 공문을 스캔해서 올려주셨다.
공문의 내용은 지난 번 시험에서 정답이 바뀐 문제가 3개 있다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채점 당시에 답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었고, 정답이 정정된 결과 내 점수는 2점이 더 올랐다.

10월 1일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자율평가고사 시험 성적에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나도 시험에 대해서는 잊고 지내고 있었다.
오후 회진을 준비하며 병동에 앉아 있는데 이비인후과 비서분이 나를 찾아오더니 축하한다면서 나에게 아래와 같은 공문을 전해주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서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다가 뒤늦게야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실력에 비해 과분한 성적을 받은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시상식 날짜가 당직날과 겹쳐서 당직을 바꾸다 보니 그날이 이비인후과 가을학회 첫날이고, 시상식이 개회식의 일부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월 10일

포스터, 숙소 체크인 등을 위해 선발대로 대전을 찾아 전날 밤을 대전에 있는 레지던스에서 묵고 아침 일찍 학회장을 찾았다.
아침에 학회장에서 하기로 했던 일들을 마무리한 뒤 후발대와 합류하여 개회식장을 찾았다.
시상식의 차례가 되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나도 호명되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님께 상장을 받았고 기념촬영도 했다.
이후에 학회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께 축하와 격려를 받아서 감사하고 기뻤다.


학회가 마친 뒤 병원에 돌아와 지난 한달 동안 겪은 일을 돌이켜보면 벌써부터 꿈만 같다.
내년 인트레이닝에서는 시험 점수는 오르겠지만 올해와 같은 등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험 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SAMSUNG CSC

나에게는 훌륭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수련기간을 이번 시험을 통해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 큰 의미가 있다.
밥먹듯 끼니와 잠을 거르며 허우적거리기에 바빴던 지난 기간들이 헛되지 않았고, 내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이번 시험의 진정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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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 0년차입니다

10월 8일

인턴 하계수련회에서 공지한 바대로, 올해부터 이비인후과도 사전면접(arrange)을 하기로 했다.
사전면접에 앞서, 이비인후과 설명회가 이날 저녁에 열렸다.
나는 그날 아침에 상을 당해서 지방으로 내려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설명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설명회에서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지원동기를 포함하여 자기소개를 했고, 모임이 끝날 무렵에는 다음 주 중 면접에 참석 가능한 날짜를 조사했다고 한다.
나처럼 사정상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한 지원자들에게는 면접에 참석 가능한 날짜를 알려달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10월 12일

사전면접 날짜가 14일로 결정되었다고 통보받았다.
더불어 면접일 아침까지 주어진 양식에 맞추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보내라는 연락도 받았다.

10월 14일

새벽에 일어나 2시간만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마감 시한을 10분 남기고 제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아과에서의 오전 근무를 마치고 면접 시간에 맞추어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면접 대기실에는 남자 지원자 7명, 여자 지원자 4명이 있었다.
현역 원내턴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기 때문에 지난 주의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한 나에게는 대부분이 초면이었다.
면접은 남자 먼저, 나이 많은 순서대로 1명씩 치렀다.
남자 중에서는 내가 2번째로 어렸기 때문에 전체 중 6번째로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들어가서 인사드리자마자 면접관 중 한 교수님께서 “우리가 왜 자네를 뽑아야 하는지 설명해 봐”라고 하셨다.
첫 질문이 워낙 강렬해서 이후의 다양한 면접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나온 지원자들은 각자 하던 일을 하러 갔다.
나는 당직을 서기 위해서 다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돌아왔다.

10월 17일

사흘 전에 보았던 면접 결과가 나왔고, 합격 여부를 듣기 위해서는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찾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함께 소아과에서 근무하는 다른 인턴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본원으로 갔다.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 개별 면담 형식으로 합격 여부를 통보받았다.
사정상 자세하게 적을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소식을 들어서 기뻤다.

11월 15일

의대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2014_레지던트_티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다시 말해 2014년 각 병원별 레지던트 1년차 정원이 확정되었다는 의미였다.
나의 관심사는 내년의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정원 숫자가 기존의 7명으로부터 변동이 있는지 여부였다.
정원이 증가하는 것은 나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정원이 감소하는 경우에는 기존 합격자 중 불합격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행히 본원 4명, 분당 2명, 보라매 1명의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정원에는 변화가 없었다.

11월 18일

원서 접수를 1주일 앞두고 레지던트 모집계획 공고가 서울대병원 채용정보 게시판에 올라왔다.

원서 이외에도 몇 가지 서류가 필요했으나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등과 같이 준비하기 까다로운 서류는 없었다.
다만 원서에 부착할 사진이나 토익 성적표는 부모님 집에 있어서 부모님께 가져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11월 21일

인턴 성적이 발표되었다(인턴 성적이 나왔다 참조).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았다.

11월 25일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원서접수 첫날에 접수하기로 했다.

작성했던 원서, 토익 성적표, 입금증 등의 서류를 가지고 예전에 인턴 원서 접수를 했던 곳과 동일하게 교육연구부 행정팀을 찾아 원서를 제출했다.

앞의 3자리(011)는 병원 코드(서울대병원), 중간 2자리(16)는 지원과목 코드(이비인후과), 마지막 3자리(017)는 병원별 접수순서를 의미한다고 했다.

현장 접수와는 별개로 온라인 원서접수도 해야 했는데,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돌아온 뒤에 잠시 시간을 내어 접수했다.
이후로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도중에 가끔씩 시간 날 때마다 레지던트 지원 현황을 새로고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월 27일

오후 5시에 원서접수가 마감되었다.
원서 접수 이튿날 오전부터 1:1로 유지되던 이비인후과 경쟁률이 변함 없이 마감되었는지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

다행해도 원서 접수가 마감될 때까지 추가 지원자는 없었다.

12월 8일

전날 당직이었지만 다행히도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었다.
팁스 책 2권 중 내과 파트를 챙겨서 병원을 나섰다.

병원 정문 로비에서는 잠실고로 전공의 시험을 치러 갈 인턴들을 위한 버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8시에 본원에서 출발해서 아침식사로 제공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공부하다 자다를 반복하다 보니 금세 잠실고에 도착했다.

나는 수험표를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잠실고 신관 1층에 위치한 시험본부에 찾아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수험표를 재교부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고사장에 가 보니 수험번호 순서대로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사전면접에서 합격한 다른 이비인후과 지원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공부를 조금 하다가 시험 시작 시간이 되었다.
문제에서 묻는 게 무엇인지가 보이는 게 대부분이어서 객관적인 문제 난이도가 쉽다고는 느꼈다.
그러나 사전면접에서 합격한 뒤로 도무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던 나에게는 답을 고르기가 힘든 문제들이 많았다.
시험이 끝난 이후에는 아침에 탔고 왔던 버스를 다시 타고 본원으로 돌아와서 안과 당직을 섰다.

12월 9일

전날 치른 전공의 시험 성적 통보를 하루 종일 기다렸다.
결국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서 각 과목별 점수, 총점, 지원자의 평균 점수가 문자로 발송되었다.
내 성적은 이비인후과 지원자 중에서는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였고, 득점 백분율로 따지면 6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점수가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공부한 만큼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12월 11일

면접을 앞두고 6일 연속으로 당직을 서다 보니 마지막날 당직 때에는 체력이 바닥났다.
자정에 하려고 했던 일을 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려 새벽 4시부터 당직일을 시작했다.
일을 마무리한 뒤 씻고 나서 면접과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한 것은 6시 반이었다.
6시 50분까지 면접 장소로 모여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면접 문제와 실기 시험의 기출문제는 알고 있었고,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려 면접관 중 몇몇 교수님께서 늦으시면서 면접 시간도 늦춰졌다는 것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면접은 접수한 순서대로 한명씩 보았고, 이비인후과 지원자 중 가장 먼저 접수했던 나부터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 내내 분위기는 좋았고, 면접장을 나설 때에는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다.
7번째 지원자의 면접이 끝난 뒤에는 다같이 모여 실기시험을 치렀다.
기출문제의 유형은 알고 있었지만, 문제 유형을 알더라도 풀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시험이 모두 마친 뒤에는 지원자들끼리 간단히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에 흩어졌다.

12월 13일

면접날 저녁부터 난무했던 합격, 불합격에 관한 소식은 이날 오후 4시에 병원 홈페이지 채용정보 게시판을 통해서 합격자 명단이 발표될 때 사실 여부가 판명될 예정이었다.

실제로는 오후 3시가 약간 지나자 합격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이비인후과의 지원자 7명 모두 합격했다.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사전면접을 치르지 않은 과들 중 일부는 경쟁률이 1대1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원보다 적게 뽑기도 했다고 한다.
2007년에 같이 입학했던 의예과 동기 70여명 중 서울대병원 레지던트에 합격한 사람은 40명 정도라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경쟁을 뚫고 합격한 몇몇 동기들에게 합격을 축하하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는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0년차가 되었다.
아직은 인턴이지만 내년에는 레지던트 1년차가 될 예정이라는 의미이다.
두 달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공식적인 합격 통보를 받으니 느낌이 달랐다.
불확실하기만 했던 내 미래 중에서 7년(레지던트 4년, 군대 3년)은 윤곽이 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과에 합격해서 수련받게 되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몇 년간 밤낮없이 고생할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된다.
수련과정을 잘 마쳐서 훌륭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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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성적이 나왔다

인턴 성적

의대생들은 성적이라는 단어에 예민하다.
여느 대한민국 학생들보다 이 단어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왔기에 그들이 의대생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대에 다니는 동안에도 성적에 대한 집착은 유지되며, 아무리 못하더라도 재시나 유급만큼은 피하기 위해 공부하다 보면 어느 새 졸업을 맞는다.

막상 인턴이 되면 시험의 압박감에서는 다소 해방되지만 대신에 근무 성적이라는 새로운 성적이 기다리고 있다.
매 달마다 과를 옮겨가면서 수련을 받고, 해당 과에서는 인턴의 근무 성적을 평가한다.
3월부터 10월까지 집계된 근무 성적은 다른 몇 가지 항목 점수들과 합산하여 인턴 성적이 되고, 이 성적은 대개 11월 말경에 개별적으로 통보된다.
결국 의대생이 졸업하고 인턴이 되어서도 성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인턴이 근무 성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시기는 11월부터이고, 이 시기의 인턴을 흔히들 말턴(말년 인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1월 13일

휴가차 부산에 와 있던 중 인턴 카페에 새 글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떴다.
네이버 카페에 접속해 보니 교육연구부에서 인턴 근무 성적 공지에 관한 안내문을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뒷 부분은 중략했으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턴 성적은 다음 주말쯤에나 알랴줌ㅋ’ 이라는 것이었다.
레지던트 선발에서 인턴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에 10월 말부터 교육연구부에 전화가 빗발쳤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았다.
또한 인턴 성적을 산출하는 데에 필요한 다른 점수들은 대개 집계가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11월 중순에 이러한 공지를 올리는 것은 일부 과에서 교육연구부에 10월 인턴 성적을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도 다른 인턴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턴 성적이 궁금했지만, 성적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11월 21일

전날 퇴근하면서도 같은 당직실 쓰는 사람들끼리 인턴 성적이 21일에 발표될 것인지 22일에 발표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보다 최신 소식에 따르면 목요일에 발표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출근하고 나서도 문자가 오기만 하면 혹시나 인턴 성적이 아닐까 싶어서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인턴 성적은 통보되지 않은 채였다.
오후 7시 퇴근을 30분 정도 남기고서 분당 응급실 단체 카톡창에 ‘근무평가등수옴!!’ 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문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 성적 통보에 개인별 시간차가 있는 듯했다.
5분 뒤에 나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교육연구부로부터 문자 발송에 오류가 있었다고 하는 공지를 받고 잠시 뒤숭숭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등수 하나가 밀리는 정도에서 마무리되어 마음이 놓였다.

내 인턴 근무 성적이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정도여서 만족스러웠다.
나의 지난 8개월이 단지 몇 자리 숫자로 표현된다는 게 허무하기도 했다.
그동안 항상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일해왔고, 다같이 힘들고 피곤한 상황에서 나의 짜증이 남에게 투사되지 않도록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 노력했던 매 순간들이 떠올랐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노력한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앞으로 남은 인턴 기간에도 지금껏 해온 것처럼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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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인턴 하계수련회 후기

하계수련회

모든 서울대 병원 인턴은 일 년에 2번 한 자리에 모인다.
첫 번째는 인턴 합격 직후 일을 시작하기 전의 신입 인턴 오리엔테이션이다.
당시에 일산에 위치한 동양인재개발원에 모여 3박 4일 동안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두 번째는 인턴 일을 시작한지 6개월 가량 지난 이후에 열리는 하계 수련회이다.
이번 수련회는 수원에 위치한 LIG 인재니움 연수원에서 당일치기로 진행되었다.

각 파견 병원에서 수련회 장소까지 오가는 시간을 포함하여 모든 인턴이 약 12시간 동안 병원을 비운다.
원래 인턴이 하는 일은 인턴 중 누군가가 하게 되어 있지만, 인턴이 병원에 없으므로 그 동안에 인턴이 해야 하는 일 중 급한 것은 주치의(레지던트 1년차)가 하고, 급하지 않은 것은 인턴이 수련회에 가기 전에 끝내놓거나 수련회에 다녀와서 마무리하게 된다.

오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원까지는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 8시 반에 버스가 출발해도 수련회 시작 시각인 9시 반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LIG 인재니움 연수원 지하 1층에 위치한 대강당에 모인 뒤에 박중신 교육연구부장님의 인사말씀으로 수련회 일정이 시작되었다.

인사말씀이 끝난 뒤에는 2014년 레지던트 선발일정을 안내받았다.
레지던트 선발은 전기모집과 추가모집으로 나뉜다.

전기모집 공고는 11월 18일
원서접수는 11월 25일~27일
필기시험은 12월 8일 10시~12시
면접 및 실기시험은 12월 11일
합격자발표는 12월 13일에 할 예정이다.

인사말씀이 끝난 뒤 이경훈 교수님의 항암치료 특강을 들었고, 이어서 신상훈 교수님의 “유머가 이긴다”라는 강의를 들었다.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수업을 들어도 학생들 사이에 성적의 차이가 나는 것을 비유로 들어, 사람들을 깔때기와 빨대로 나눌 수 있다고 한 내용이었다.

오후

오전 강의가 끝나고 단체사진 촬영과 점심식사를 한 뒤에는 진료과 소개가 이어졌다.
아침에 강의실 입구에서 나누어 준 책자에 각 과들의 소개 자료가 들어 있어, 이를 참고하며 소개를 들었다.
최근에 레지던트 지원률이 저조하거나, 올해 처음으로 전공의 모집을 시작하여 인지도가 부족한 과들은 특별히 전체 인턴을 대상으로 진료과를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외과, 분당 영상의학과 등에서 과 소개를 하였다.
잘 준비된 프레젠테이션은 물론이고, 공을 들여서 제작한 것이 느껴지는 홍보 영상도 제공되었다.

그런 뒤에는 10여 개의 부스로 나뉘어 30분씩 한 세션으로 각 과별 소개시간이 있었다.
전체 인턴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각 인턴들이 관심이 있는 부스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관심이 있는 과의 부스에 찾아가서 30분간 소개를 듣고 10분간 다른 부스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임상약리학과, 가정의학과, 안과, 이비인후과 부스를 차례대로 돌아다니면서 소개를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휴식을 취했다.

오후 6시까지 과별 소개시간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각 진료과별로 테이블을 배정해 주었고, 사전에 관심이 있는 과를 조사하여 테이블을 배정해 주었다.
나는 이비인후과 테이블에 앉아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이비인후과에 관심이 있는 인턴들과 함께 식사했다.
가족같은 분위기를 정말 잘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가 마친 뒤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각 수련병원으로 복귀했다.
전날 당직을 서고 하루종일 수련회에 다녀온 뒤, 밀린 정규 일들을 하느라 몸은 무거웠다.
그러나 이번 수련회를 계기로 나의 진로에 대해 확실히 결정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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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센터 자궁외과 인턴 후기

국립암센터 자궁외과

국립암센터에서는 다른 병원에서의 일반적인 과 구분을 따르지 않고 장기별로 센터를 구분지어 진료를 한다.
즉 일반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위암외과, 폐암외과, 자궁외과 등으로 부른다.
국립암센터의 자궁외과는 다른 병원에서의 부인과에 해당하며, 자궁 이외에도 난소, 나팔관, 질 등을 포함하는 부인과 종양을 다룬다.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자궁근종, 난소암, 외음부암 등을 수술로 치료한다.
수술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다른 병원에서 들었거나, 혹은 더 큰 병원에 가서 수술받으라고 이야기 들은 환자들이 대개 국립암센터 자궁외과를 찾는다.
물론 이곳에서는 LLETZ(Large Loop Excision of the Transformation Zone), myomectomy와 같은 간단한 수술도 많이 하지만, explorative laparotomy 이후의 cytoreductive surgery, total/anterior pelvic exenteration와 같은 큰 수술을 많이 한다.

자궁외과 수술장 인턴

길게만 느껴졌던 한 달이 지나갔다.
나는 자궁외과 수술장 인턴이었고, 나의 7월은 곧 국립암센터 병원동 4층 수술장 11번방과 14번방이었다.

자궁외과에서는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긴 수술들을 하루에도 여러 개씩 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수술장 인턴은 쉴 틈 없이 수술에 들어가며, 하루 종일 서서 수술을 보조하기 때문에 몸이 편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정규시간(오후 5시) 이내에 수술이 끝난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낮에는 몸이 피곤했고, 저녁에는 집에 잘 못 갔지만, 평생 해보지 못할 다양한 수술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TAH+BSO(total abdominal hysterectomy+bilateral salpingo-oophorectomy) 수술에 내가 first assist로 참여했던 것은 그다지 신기한 편이 아니었다.
복강경 수술에 first assist로 참여한 수술들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RH+PALND(radical hysterectomy+paraaortic lymph node dissection)에서 scope을 잡았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또한 배를 열자마자 아무리 석션해도 끝이 없는 점액질이 몇 리터씩 쏟아져 나오던 pseudomyxoma peritonei(복막의 가성점액종) 환자에 대한 고식적인 수술(palliative surgery; 일시적으로 병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수술)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수술들은 내가 산부인과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 평생 다시 해보지 못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수술을 보조한다고 하여 질병 자체에 대해 배우고 해당 수술의 차례를 외운 것은 아니다.
수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하며 배울 수 있었고, 집도의를 보조하여 수술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눈치와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유익했던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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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집도를 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이번 달에 암센터 자궁외과 수술장 인턴으로 근무중이다.
매일 아침 8시에 수술장으로 출근했다가 오후 4시~9시에 수술장에서 나오는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하루 중에서도, 어제는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암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하던 중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때마침 충수절제술을 할 단계였다.
그 수술 내의 다른 과정과는 달리, 충수절제술을 할 때에는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수술하던 참여하던 사람 중 2명은 점심식사를 하러 보내고, 나와 집도의 선생님만 남아서 충수절제술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집도의 선생님께서 나에게 앞으로 어떤 과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내가 수술하는 과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나에게 충수절제술을 집도할 기회를 주셨다.
물론 메스만 내가 들었을 뿐, 집도의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마치 아바타처럼 수술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다른 선생님들께서 충수절제술을 하시는 과정을 몇 번 보았기 때문에 내가 수술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해보려니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집도의 선생님께서 한 단계씩 차분히 알려주신 덕분에 무사히 충수절제술을 해낼 수 있었다.

그 수술의 나머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메스로 충수를 잘라낼 때의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했던 손맛은 기억에 남는다.
본과 1학년 해부학 실습 때에 스칼펠로 카데바를 절개하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날 오후에 있었던 또 다른 수술에서는 피부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접 매듭을 만들기도 했다.
집도와 마찬가지로 실제 수술에서 매듭을 만드는 경험도 난생 처음으로 해 보았다.
여러 모로 2013년 7월 9일 화요일은 나에게 의미 있게 기억될 것이다.

참고로 이렇게 해당 수술의 첫 집도를 한 것을 ‘이와이’라고 부른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에 수술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관례이다.
나는 커피를 대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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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CPR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의 사이에는 질병이 있다.
질병과 죽음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답 중 하나를 인턴 의사의 입장에서 알아가는 중이다.

나중에 메이저 과를 선택하지 않게 된다면, 내 평생 중 이번 인턴 1년 동안이 죽음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기간이 될 것이다.
특히 요즈음은 세 달째 메이저 과에서 근무하다 보니 환자의 사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내가 매일 아침마다 히크만 카테터에서 채혈하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히크만 카테터를 제거한 경험이 있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보호자가 연락되지 않아 새벽 3시부터 한 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경험도 있다.

인턴에게 환자의 사망이 가지는 의미

병실에 입원한 환자의 사망 과정은 대개 비슷한 경과를 밟는다.
호흡곤란, 심박수 이상, 항생제로 조절되지 않는 발열, 혈중 염증수치 증가, 전해질 불균형, 의식저하 등의 징후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심정지가 발생하면 병원 내에 CPR 방송을 한다.
의료진이 모여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심박동이 회복되면 환자를 내과계 중환자실로 이송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심박동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다가 연락 받고 찾아온 보호자가 심폐소생술 중단에 동의하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하고 사망진단을 내린다.

이러한 과정을 인턴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혈액배양과 동맥혈 채혈을 동시에 시행하게 되는 환자가 있거나, 채혈, 관장, 심전도 검사를 자주 시행하게 되는 환자가 있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둔다.
그러다가 언젠가 “솔시~레솔 솔시~레솔, 솔시~레솔 솔시~레솔”로 시작하는 다급한 CPR 방송 알람이 울리면 당장 몇몇 환자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CPR 방송에서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CPR팀 00병동” 소리를 듣고 해당 병실로 달려가 보면 예상했던 환자에 대해 심폐소생술이 진행중이다.
장갑을 끼고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면 심장마사지를 시작한다.
환자의 심박동이 회복되면 그 환자를 담당하는 인턴이 앰부백을 짜면서 내과계 중환자실로 이동한다.
심박동이 회복되지 않고, 심폐소생술 중단에 보호자가 동의하여 사망 진단이 내려지면, 그 환자를 담당하는 인턴이 히크만 카테터, 소변줄 등을 제거하게 된다.

요약하건대, 인턴에게 환자의 질병과 죽음의 사이에는 CPR(심폐소생술)이 있다.

DNR

가끔씩은 CPR 방송 없이 환자가 사망했으니 카테터를 제거해달라는 연락만 병동에서 인턴에게 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심정지가 발생하기 이전에 환자가 CPR을 원치 않는다고 미리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를 심폐소생술 거부, 또는 DNR(Do not resuscitate)이라고 부른다.
또는 단지 CPR을 거부하는 것 이외에도, 영양공급, 혈액투석, 수혈, 혈액검사, 항암치료 등에 관해 선택할 수 있는 포괄적인 내용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CPR의 의미

심정지가 찾아온 환자에게 CPR을 시행해 자발적인 심박동이 회복되더라도 대부분 그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의식 없이 심장만 뛰는 상태로 몇 시간을 버티다가 결국 다시 심정지가 발생한다.
처음 CPR을 할 때에는 환자의 심박동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여러 환자에게 CPR을 시행해 보고 그 장기적인 경과가 좋지 않은 것을 알게 되니 CPR을 하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심정지는 한밤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인턴이 하는 술기들 중 가장 힘든 것이 흉부압박인데다, 한 번 CPR을 시작하면 대개 20분 이상씩은 하기 때문에 CPR을 하고 나면 몸이 지친다.
결국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몸이 힘든 일을 해야 하니 마음도 지치게 된다.
이 CPR을 왜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누군가는 죽음을 맞는 환자에 대한 예의라고 대답한다.
죽음을 맞을 때에 환자 혼자서 쓸쓸히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사, 간호사가 환송해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라도 적어도 30분은 흉부압박을 해야 예의가 아니겠냐고 주장하며, 일부러 사전에 DNR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어 혼자 흉부압박을 해보고 나면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대답이지만 나는 CPR이 갑작스럽게 죽음에 마주친 환자가, 가족 곁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환자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해 미리 DNR을 받는 등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지 못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일종의 벌이라고도 느꼈다.

물론 짧은 기간에 몇 번 CPR을 해 보았다고 해서 내가 심폐소생술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해 보게 되고, 교과서로부터 머리로 받아들인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개념이 아니라, 가슴과 온몸으로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한 걸음 나아갔다고 느끼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라는 말은 나에게 인턴이 된 이후에 더욱 뼈저리고 가슴 뭉클하게 와닿고 있다.
아직은 느끼고 배우고 자라야 할 점이 더 많다고 매일 생각한다.

3줄 요약

  1. CPR은 심정지 환자에게서 심박동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다.
  2. 인턴에게 환자의 죽음은 CPR을 의미한다.
  3. CPR의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고 배우는 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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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센터 간담췌암외과 인턴 후기

서울대병원 본원에서의 3개월간의 인턴 근무를 마치고 6월부터 3개월간은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에 파견되었다.
6월에는 간담췌암외과(일반외과), 7월에는 자궁암외과(부인과), 8월에는 마취과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5월 31일 오후 6시에 본원에서 퇴근한 뒤에 짐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국립암센터로 왔다.

암센터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신기했던 것은 당직실이었다.
넓고 쾌적할 뿐 아니라 TV, 정수기 등의 장비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직실에 감탄하고 있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CPR 방송이 나왔다.
나는 오프였기 때문에 CPR에 갈 필요는 없었고, 이곳의 CPR 방송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방송을 듣고 있었다.
CPR 방송이 너무나 평온했기 때문에 놀랐고, CPR 방송을 단지 2번만 반복해서 해주고 끝났기 때문에 놀랐다.

전산팀에 방문하여 새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EMR에 접속해서 로그인해 보니 친숙한 화면이 나를 반겼다.
EMR에 새로 적응하기 위해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지나간 암센터에서의 첫날 이후 한 달 동안 암센터 간담췌암외과에서 일하면서 몇 가지 불편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중앙계단이 없어 한두 층을 직접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했다.
특히 당직 시간에 5층(폐혈액종양내과)과 7층(간담췌암외과)을 빈번하게 오가는데 단지 두 층을 이동하기 위해 매번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타야 하는 점이 귀찮게 느껴졌다.
또한 ABGA용 주사키트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 매번 1cc 주사기에 직접 헤파린을 코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불편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별다른 불편한 점이 없었다.
주사기의 종류, 일회용 멸균장갑의 종류, 수술장의 구조 등은 본원과 달라서 처음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오히려 본원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암센터 간담췌암외과에서의 인턴 근무는 편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한다.
칭찬을 통해서 한 가지를 배우고 꾸중을 통해서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었던 지난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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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하기 힘든 날

역치가 높아서 그런지, 지금까지 세 달 째 인턴 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4월 중 이비인후과 수술이 익일 6A에 끝났던 날이 그날이었다.
그날 이외에는 인턴이 할 일이 많기는 해도 견딜 만은 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근래에 인턴 생활이 힘들다고 느낀 날이 하루 더 생겼다.
이틀 전 11층 당직(101, 111, 112, 114 병동)을 하던 날이었다.
11층 당직을 서는 날의 인턴의 수면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대개 혈액배양 환자수이다.
혈액종양환자들은 대개 히크만 카테터를 가지고 있고, 이들에게서 열이 날 경우 말초 2쌍과 히크만 2쌍, 총 4쌍(8병)짜리 혈액배양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준비하고 채혈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혈액배양 환자수가 많으면 그만큼 잠 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밤에는 혈액배양을 한 사람의 숫자가 5명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당직이 힘들었던 이유는 갑자기 전신 상태가 악화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발 호흡이 없거나 매우 약할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나쁜 경우, 중환자실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수동식 인공호흡기(앰부 백)를 적용해야 한다.
이 경우 앰부 백을 짜는 일은 주로 인턴의 몫이다.
앰부 백을 짜는 일은 힘든 편은 아니지만, 그 동안에 쉴 수 없는데다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이 쌓이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내과에서 당직을 서는 동안에 내가 앰부 백을 짜야 하는 환자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날 밤에는 환자 두 명이나 앰부 백을 짜야 했다.

한 환자는 밤 10시 경에 상태가 악화되었다.
혈액 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하고 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11시부터는 앰부 백을 짜면서 내과계 중환자실까지 이동했다.
그런 뒤에 그동안 쌓였던 소독, 채혈, 혈액배양 검사, 관장, 청결 간헐 도뇨, 비위관 삽입 및 세척 등의 일을 했다.
일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3시 반경이 되었다.
원래의 목표가 3시에 잠드는 것이었다가 30분 정도 늦어진 것이라 이정도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30분 정도 잠을 자던 중 콜을 받고 잠에서 깼다.
케모포트 바늘 교환, 심전도 검사 등의 할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들을 마무리하고 5시 경에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환자에게서 각종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고 응급 CT 검사에 동반하여 다녀왔다.

그런 뒤 잠을 잘까 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내 담당 병동에서 할 정규 채혈을 준비하기로 했다.
당직은 7시까지 서야 하는데 내가 맡은 병동의 정규 채혈은 6시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규 채혈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앰부 백을 짜러 와야 한다는 콜을 받았다.
5시 반부터 앰부 백을 짜기 시작해서 아침 7시에 당직이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앰부 백을 짰다.
당직을 마치고 정규 근무가 시작되었는데, 밤새 잠을 30분밖에 자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6시부터 해야 할 정규 채혈을 하나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허겁지겁 정규 채혈, 처방 입력, 동의서 받기, 소독 등의 일을 해두고 당직실에서 1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에 다시 골수 검사 보조를 하러 병동에 갔다.
급한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정오가 다 되었다.

감기에 걸려 몸이 아픈 상태에서 배도 고프고 잠도 부족한 것이 겹치니 힘들었다.
마지막 식사 후 15시간만에 먹는 병원식당의 모밀국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환자가 건강하기를 인턴이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느끼게 된다.
환자가 아프면 환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환자이지만, 보호자, 주치의, 간호사, 인턴 모두가 고생을 하게 된다.
이유는 다르더라도, 인턴은 환자가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열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가슴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숨쉬는 것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고, 수액 들어가는 팔이 붓지 않기를 바라고, 변을 제때 잘 보기를 바라고, 소변을 잔뇨 없이 스스로 잘 보기를 바라고, 식사를 입으로 잘 하기를 바라고, 욕창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할 리가 없다는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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