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스포로 시작해서 스포로 끝나는 리뷰입니다.
이 영화를 볼 예정이신 분들은 처음부터 제 리뷰를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줄거리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재능 없는 제자 서지우를 떠나보내기 위해 스승 이적요는 자기가 쓴 소설 심장을 서지우의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서지우는 많은 돈을 벌지만 이적요로부터 독립한 이후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적요의 집안일을 돕는 고등학생 은교는 시를 통해 이적요와 가까워집니다.
서지우는 이적요가 은교에 대해 품는 감정을 추문으로 비난하고, 이적요가 은교를 그리며 쓴 소설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은교는 그 소설을 서지우가 쓴 것으로 믿고, 자신을 예쁘게 그려준 데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서지우가 은교와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본 이적요는 서지우를 죽이고, 자신은 술에 빠져 살아갑니다.
몇 년 후에서야 소설 은교를 쓴 사람이 이적요라는 사실을 깨달은 은교는 이적요를 찾아와 재회합니다.

배경음악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음악이 어우러집니다.
특히 이 점이 두드러진 것은 은교가 다시 이적요의 집으로 들어와서 이적요의 방 앞으로 갔다가 되돌아서 지하로 내려가는 발걸음에 맞추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앞부분까지는 경쾌하고 가볍고 설레는 느낌이었다면, 뒷부분에서는 불안하고 충동적인 불협화음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발만 나오는 장면이지만 은교의 선택, 망설임, 다른 선택을 선택하는 심리가 잘 드러납니다.
효과 면으로 보자면 이 장면에서 은교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함축성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엄청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어느 정도나 이해한 것일까, 감히 리뷰를 남길 수 있을까 등의 생각도 들었습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에 내용에 깊이가 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지만, 대사와 영상 하나하나마다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비유적인 표현들은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젊음, 늙음

영화 속에서 은교와 이적요가 나이를 먹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은교가 나이를 먹는 것은 대학생이 된 모습으로 나오고, 이적요가 나이를 먹는 것은 그의 생일로 나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은교에게는 어른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뜻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적요에게는 어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은교는 젊음을 뜻합니다.
헐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헤나 타투, 과감함 등과 어울립니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나이만큼 꽂습니다.
은교는 거의 항상 움직이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이적요와의 첫 만남에서 의자에 누워서 자는 장면조차도 역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이적요는 늙음을 상징합니다.
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하나만 꽂습니다.
영화 내에서 마치 사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적요의 집은 그를 잘 나타냅니다.

시선

원작 소설에서는 다르다고 하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이적요의 시선으로 구성됩니다.
은교와의 첫 만남,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서 은교와의 정사를 상상하는 장면,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 등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영화 내에서 은교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해

은교는 자신을 예쁘게 봐주고 예쁘게 그려준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서지우가 아니라 이적요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당시의 은교는,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분위기, 공기, 습기는 말로 전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성숙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다리, 문

사다리는 비공식적인 만남, 문은 공식적인 만남을 뜻합니다.
이적요와 은교와의 처음 만남은 은교가 사다리를 타고 들어오는, 비공식적이고 우연한 과정으로 시작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은교는 한쪽 무릎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은교가 이적요의 집안일을 맡게 되면서부터 은교는 이적요의 정문 열쇠를 받아 문을 통해 이적요의 집에 들어옵니다. 이를 통해 이적요와 은교와의 관계가 규칙적이고 공식적인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적, 계절적 배경

여름에는 열정, 겨울에는 죽음이 대응되는 구조입니다.
이적요와 은교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은 여름 동안에 이루어집니다.
이적요의 생일은 눈 내리는 겨울에 있습니다.
서지우가 죽음을 맞는 것은 이적요의 생일 다음날, 즉 겨울입니다.

동기

예술 작품은 어떤 동기(에너지)가 있어서 탄생합니다.
예술가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동기가 되지 않는 것들에서 동기를 찾아낸다는 점과, 그 동기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적요에게는 젊음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이것이 은교를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강렬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은교라는 제목의 소설로 승화되어 표현된 것입니다.

반면에 서지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지우는 이미 젊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교를 통해 젊음을 가지려는 욕망은 이적요만큼 강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지우에게 동기가 될 만한 감정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서지우에게는 강렬한 동기가 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있었지만,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성행위로 해소해버립니다.

강렬한 동기는 칼과 같은 것으로써, 엇나갈 경우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적요는 은교를 서지우에게 빼앗긴 이후의 상실감으로 인해 자기자신과 서지우를 파괴시키게 됩니다.

라이벌 의식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지우는 은교와 라이벌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통 소리에서 연필의 슬픔을 느끼는 모습, 어머니의 발꿈치를 묘사하는 모습 등을 통해, 서지우와 대비되는 예술자적인 은교의 모습이 나옵니다.
서지우가 은교에 대해서 품는 감정은 이러한 여러 상황들과 섞여서 복잡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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